제3부 술잔에 취한 권력
⑩ 술자리의 끝판왕 ‘주지육림’
쾌락주의가 만연했던 로마 제국 말기 방탕한 연회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한 프랑스 화가 토마 퀴튀르의 대표 유화 작품 ‘쇠퇴기의 로마인들’(1847).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위키미디어 커먼스
주지육림은 정말 있었을까…3000년을 건너온 가장 화려한 술자리는 오늘도 회자된다.
권력은 칼로만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다. 때로는 술잔 하나가 천 명의 병사보다 강했고, 성대한 연회 한 번이 전쟁 한 차례보다 더 큰 충성심을 얻었다. 왕조는 무너지고 궁전은 폐허가 됐지만, 권력과 술이 손을 맞잡는 풍경만큼은 30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낯설지 않다.
그 상징의 이름이 바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이다.
◇ 은나라 폭군 주왕의 술판
‘사기’의 ‘은본기’에서 사마천은 주왕을 이렇게 기록했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이루게 했으며, 남녀를 벌거벗긴 채 그 사이를 서로 쫓게 하며 밤새 술을 마시고 즐겼다.“ 불과 수십 자에 지나지 않는 기록이지만, 이 문장은 주왕을 3000년 동안 동아시아 최고의 폭군으로 만들어 버렸다.
후대 문헌은 여기에 더욱 선명한 색을 입혔다. 술 연못은 배를 띄울 만큼 넓었고, 나뭇가지마다 소·양·돼지 고기가 주렁주렁 걸렸다고 묘사했다. 연회가 시작되면 악사들이 밤낮으로 연주했고, 귀족과 신하들은 술이 떨어질 때까지 마시고, 고기를 뜯으며 환락에 빠졌다. 실제 풍경인지, 후대의 상상력이 덧칠한 정치적 삽화인지는 지금도 논란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장면이 이후 수천 년 동안 폭정과 퇴폐, 향락의 표준 이미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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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 역사학계는 주지육림이 실제보다 과장됐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새 왕조가 이전 왕조의 폭정을 부각해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사례는 역사에서 흔하다. 실제 은나라 수도인 안양 은허에서는 수많은 청동 술잔과 제사 유물이 발견됐지만, 술 연못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왕이 술을 멀리한 군주였다는 뜻은 아니다. 술은 제사였고 외교였으며, 왕권을 과시하는 가장 화려한 정치 언어였다.
주왕보다 앞선 하(夏)나라의 걸왕(桀王) 역시 술과 여색에 빠져 나라를 잃은 폭군으로 전해진다. 실제 주지육림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후대는 걸왕과 주왕을 나란히 세워 폭정의 교과서로 삼았다.
◇ 서양의 주지육림, 로마 연회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
주지육림은 로마에서 더욱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로마 귀족의 연회는 식사가 아니라 권력을 연출하는 거대한 무대였다. 손님들은 의자 대신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음식을 먹었고, 황제와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 몸을 뉘었는지가 곧 권력의 서열이었다. 잔을 드는 순서와 음식을 내는 방식까지 모두 정치였다. 기원후 1세기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 에는 졸부 트리말키오의 연회가 생생하게 묘사된다. 거대한 멧돼지를 통째로 식탁에 올린 뒤 배를 가르자 소시지와 순대가 쏟아지고, 그 속에 숨겨 두었던 살아 있는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손님들이 탄성을 지르는 사이 악사들은 연주를 시작했고, 노예들은 향수를 뿌리며 금잔과 은잔을 번갈아 채웠다.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공연이었고, 주인의 부를 과시하는 살아 있는 광고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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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 비텔리우스(Vitellius)는 한술 더 떴다. 홍학의 혀와 장어의 간, 칠흑같이 깊은 바다에서 잡은 희귀 어류의 내장, 멀리 파르티아에서 들여온 꿩의 뇌까지 제국 곳곳의 진귀한 식재료를 한 접시에 담아 먹으며 황제의 부와 권력을 뽐냈다. 연회는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더 많이 먹고 더 오래 마시는 것이 곧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일부 귀족들은 배가 부르면 일부러 토한 뒤 다시 술잔을 들고 식탁으로 돌아왔다는 기록까지 전한다. 이를 지켜본 철학자 세네카는 “그들은 먹기 위해 토하고, 토하기 위해 먹는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주지육림이 술과 고기의 산이었다면, 로마의 연회는 사치와 향락이 권력으로 변장한 가장 화려한 연극이었다.
시간은 흘러 1700년 무렵 프랑스 루이 14세의 의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어진다. 이곳의 만찬은 식사가 아니라 절대왕정을 연출하는 거대한 연극이었다. 귀족들은 왕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영예로 여겼고, 왕에게 포도주 잔을 올리거나 냅킨을 건네는 사소한 역할조차 치열한 경쟁의 대상이 됐다. 연회가 열리면 은접시와 금잔이 끝없이 이어졌고, 공작과 꿩, 백조, 멧돼지, 송아지 통구이와 굴, 송로버섯 같은 진귀한 음식이 수십 차례 차례로 식탁을 메웠다. 사치는 극에 달했다. 특별한 축제 때에는 포도주를 분수처럼 흘려보내며 왕실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귀족들은 화려한 의상과 보석으로 서로를 압도하려 했고, 식사보다 누가 왕의 시선을 더 오래 붙잡느냐가 더 중요한 경쟁이었다. 술잔 하나와 만찬 한 끼는 충성을 확인하는 정치 의식이었고, 베르사유의 화려한 식탁은 프랑스의 부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루이 14세의 절대권력을 연출하는 가장 눈부신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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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술잔은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을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끝없는 사치와 향락은 왕조의 기둥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 대가는 한 세대를 건너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왔고, ?절대 권력자의 5대손 루이 16세는 성난 민중에 둘러싸인 가운데 단두대에서 자신의 머리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 현대판 주지육림
시계를 오늘로 돌리면 무대만 달라졌을 뿐 주지육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재벌의 초호화 저택이 현대판 주지육림으로 등장한다. 최고급 위스키를 섞은 폭탄주, 산해진미가 식탁을 가득 메우고, 정·재계와 언론계 실세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권력과 이권을 거래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여성들이 술자리의 분위기를 돋우며 권력자들의 욕망을 장식한다.그곳에서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고 비밀을 묶어 두는 계약서였다. 현실에서도 정·재계의 호화 접대와 기업의 비밀 향응은 끊이지 않았다. 궁전은 저택으로, 금잔은 크리스털 잔으로 바뀌었을 뿐 술잔이 권력과 이해관계를 이어주는 도구라는 사실은 3000년 전 주지육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술잔 밖의 인문학 - 술잔 앞에 민낮을 드러내는 권력
주지육림은 실제로 존재했을 수도 있고, 후대가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정치적 상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류는 끝내 술로 연못을 만들지는 못했어도, 권력은 시대마다 술잔 속에 자신만의 연못을 만들어 왔다.
왕궁은 연회장이 되었고, 연회장은 비밀 접대실이 되었으며, 청동 술잔은 크리스털 와인잔으로 바뀌었다. 무대는 변했지만 배우는 바뀌지 않았다.
왕관은 머리에 쓰지만, 권력은 언제나 술잔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폭군은 칼로 기억되지 않는다. 술잔으로 기억된다.
로 돌아왔다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