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했는데 손실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 보통은 투자한 사람끼리 똑같은 비율로 손실을 나눠 갖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펀드에서 10% 손실이 발생하면 100만원을 투자한 사람은 10만원을 잃는 식이죠.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같은 펀드에 돈을 넣어도 누군가는 먼저 손실을 보고, 누군가는 그다음에 돈을 잃을 수 있는 방식도 있어요.
최근 판매를 시작한 ‘2차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가 대표적입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차 펀드는 일반 국민에게 6000억원을 모집하는데요. 판매 첫날에만 약 2140억원, 목표액 35.7%가 팔렸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죠. 투자금액에 따라 최대 40% 소득공제와 배당소득 9.9% 분리과세 혜택이 적용되는 .도 관심을 끈 요인입니다.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에는 일반 투자자 돈만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정부 재정도 함께 투입되는데요. 흥미로운 .이 있습니다. 손실이 발생하면 일정 범위까지 정부 재정이 일반 투자자보다 먼저 손실을 떠안는 구조라는 겁니다.
같은 펀드에 들어간 돈인데 왜 정부 돈부터 먼저 깎일까요. 금융에서 흔히 말하는 ‘후순위 투자’에 그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같은 투자라도 손실 순서는 다르다
후순위 투자,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돈을 잃을 때 누가 먼저 손실을 부담할지 미리 순서를 정해두는 것인데요.
아주 단순한 펀드를 하나 만들어보겠습니다. 100억원짜리 투자펀드인데, 일반 투자자 돈 80억원과 후순위 투자자 돈 20억원으로 구성됐습니다.
투자가 잘돼 120억원이 됐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미리 정한 방식에 따라 수익을 나누면 됩니다.
하지만 투자한 기업가치가 떨어져 펀드에서 10억원 손실이 발생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반 투자자와 후순위 투자자가 8억원, 2억원씩 나눠 손실을 부담하는 게 아닙니다. 후순위 20억원에서 먼저 10억원이 깎입니다. 일반 투자자 80억원은 아직 그대로이고요.
손실이 25억원이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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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순위 20억원이 먼저 모두 사라지고, 남은 5억원 손실이 그제야 일반 투자자 몫으로 넘어옵니다.
후순위 핵심은 손실이 날 때 먼저 위험을 떠안는다는 。입니다. 반대로 그 뒤에 손실을 부담하는 쪽을 선순위라고 부릅니다.
금융에서는 이렇게 하나의 투자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여러 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눠진 각각의 층을 전문용어로 ‘트랜치(tranche)’라고 합니다. 선순위·중순위·후순위가 서로 다른 트랜치인 셈이죠.
이번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도 기본 원리는 같습니다만 실제 구조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국민에게서 모은 자금이 여러 자펀드에 다시 투자되는 재간접 방식이고, 자펀드 단계에서 정부 재정이 후순위로 참여해 일정 구간 손실을 먼저 흡수합니다.
쉽게 말하면 일반 투자자 돈 앞에 정부 돈으로 만든 ‘충격 흡수용 에어백’ 하나를 먼저 깔아두는 셈입니다.
정부는 왜 굳이 더 먼저 손실을 떠안을까
여기서 또 하나 궁금해집니다. 후순위가 더 위험한 자리라면 정부는 왜 굳이 그 자리에 들어갈까요.
이유는 민간 돈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아직 매출이나 이익이 충분하지 않은 첨단기술기업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성공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실패 위험도 큽니다.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뜻 돈을 넣기 부담스러운 대상이죠.
이때 정부가 일부 손실을 먼저 떠안겠다고 나서면 셈법이 달라집니다. 처음 발생하는 손실을 정부 재정이 먼저 흡수하니 일반 투자자가 위험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죠. 민간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이게 정책금융에서 후순위 출자를 활용하는 이유입니다. 정부 돈 1원을 넣어 기업에 1원만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가 일부 위험을 먼저 부담해 그보다 더 많은 민간 자금이 따라오도록 만드는 겁니다.
국민성장펀드 역시 이런 구조입니다.
다빈치 릴게임
이번 2차 펀드는 국민에게서 6000억원을 모집하고 정부 재정 1200억원을 후순위로 보태 총 7200억원을 10개 자펀드에 나눠 투자합니다. 투자 대상은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로봇·방산 등 첨단전략 산업 기업입니다. 개별 자펀드는 결성금액 60% 이상을 이런 주목적 투자 대상에 넣도록 설계됐습니다. 일반 투자자가 첨단 산업 투자에 참여할 문턱을 낮추는 셈입니다.
2차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 자금 구조
다만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될 。이 있습니다. 후순위가 있다고 해서 일반 투자자 원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먼저 받아낼 수 있는 손실 범위를 넘어서는 손실이 발생하면 결국 일반 투자자 돈도 줄어듭니다.
후순위 투자, 국민성장펀드에만 있을까
후순위 투자는 국민성장펀드만 갖고 있는 특별한 장치는 아니에요. 금융 시장 곳곳에서 이미 널리 쓰이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입니다.
예를 들어 1000억원짜리 부동산 개발 사업에 여러 금융회사가 돈을 댔다고 해보겠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으로 돈을 대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이 잘못돼 회수할 수 있는 돈이 부족해질 경우, 누가 먼저 돈을 돌려받을지 순서를 정해둘 수 있는데요. 먼저 상환받는 쪽이 선순위, 그보다 뒤에 서는 쪽이 중순위·후순위입니다.
채권을 묶어 만든 유동화증권에서도 같은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 주택담보대출이나 기업대출을 한데 모은 뒤, 여기서 나오는 돈을 받을 권리를 선순위와 후순위 등 여러 층으로 나눠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식입니다.
가령 여러 대출에서 앞으로 100억원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약속한 원리금을 선순위 투자자에게 먼저 지급하고 남은 돈을 후순위 투자자에게 주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출 부실이 늘어 실제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면 후순위가 먼저 손실을 떠안습니다.
후순위, 더 위험한 대신 더 높은 기대수익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궁금해집니다. 국민성장펀드에서 정부가 후순위에 들어가는 건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려는 정책 목적이 있다고 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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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똑같은 민간 투자자끼리, 왜 굳이 더 위험한 후순위를 선택할까요.
답은 수익률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위험을 더 많이 떠안는 대신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실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고 싶은 투자자는 기대수익이 조금 낮더라도 선순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는 손실을 먼저 부담할 위험을 감수하고 후순위를 선택할 수 있죠.
이렇게 하나의 자산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수익을 여러 층으로 나누면 서로 다른 투자 성향을 가진 여러 사람의 돈을 한곳에 모을 수 있습니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투자자는 선순위로 들어가고요. 어느 정도 손실을 부담할 체력을 갖춘 투자자는 더 높은 기대수익을 노리고 후순위에 들어가는 식입니다.
선순위는 상대적으로 손실 위험이 낮고, 후순위는 손실을 먼저 부담하는 대신 더 높은 기대수익을 노릴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다시 국민성장펀드로 돌아오면 정부는 더 높은 수익을 노리고 후순위를 선택한 일반 투자자와는 목적이 다릅니다. 정부 재정이 먼저 일정 위험을 떠안아 일반 투자자의 투자 문턱을 낮추고, 그만큼 더 많은 민간 자금을 첨단 산업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입니다.
결국 후순위 투자는 누가 먼저 위험을 감당할지 순서를 정해, 자금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금융의 방식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①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 정부 재정을 후순위로 넣어 일반 투자자보다 먼저 일정 손실을 흡수하도록 설계한 정책펀드
② 후순위: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선순위보다 먼저 손실을 떠안는 투자금으로, 일반적으로 더 높은 수익률 기대.
③ 트랜치: 하나의 투자상품을 위험과 손실 부담 순서에 따라 나눈 여러 층, 또는 그 층을 나누는 구조
주가는 누가 정하고, 금리는 왜 오르며, 은행은 어디서 돈을 벌까요. 한 번쯤 궁금했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던 금융의 속사정. ‘최소한의 금융상식’은 매일 뉴스에서 접하지만 막상 설명하자면 헷갈리는 금융의 작동 원리를 최신 뉴스와 친숙한 비유로 풀어드립니다.
후순위 핵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