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적은 도요타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한때 ‘재계 총리’로도 불렸던 오쿠다 히로시 전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지난 8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도요타 사장과 회장, 통합 이후의 첫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장을 지내는 등 일본 경제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침체된 일본 경제에 ‘변화’를 외친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55년 히토쓰바시대 상학부를 졸업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해 회계·경리 쪽 업무를 맡았다. 이후 40년 가까이 근무하다 도요타 가문이 아닌 첫 외부인으로 1995년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 일성부터 조직의 안일함을 겨냥했다. 당시 도요타는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지만, 일본 내 시장。유율은 40%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앞으로 도요타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달라”며 “최대의 적은 내면의 자만”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대표적인 구호는 ‘타도 도요타’였다.
모바일 온라인바다이야기릴게임
이러한 역설적인 구호를 통해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구태에서 벗어나 자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의 경영철학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1997년 등장한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자동차 ‘프리우스’ 양산이었다. 그는 시장성이 불확실한 하이브리드 기술의 미래를 확신하고, 당초 양산 일정을 1년 앞당길 정도로 속도를 냈다.
그는 “기술력이 있다고 시장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며 “경영진이 기술을 상품과 시장으로 연결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도요타의 최고 효자상품인 하이브리드 시장을 직접 만들었다.
도요타의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도 오쿠다 전 사장의 작품이다. 그는 일본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미국·유럽·아시아 등 현지 생산, 현지 판매 체제를 만들었다.
그 결과 도요타의 연결 매출은 1996회계연도(1995년 4월~1996년 3월) 약 11조엔에서 2006회계연도 21조엔으로 약 두 배 늘었다
바다이야기 디시
. 세계 판매량도 같은 기간 크게 증가하면서 도요타가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1999년 도요타 회장에 오른 뒤 오쿠다 전 사장의 활동 무대는 일본 경제계 전체로 넓어졌다. 2002년에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와 일본경영자단체연맹이 통합한 새로운 게이단렌의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정부에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오쿠다 전 사장은 일본을 ‘한 바퀴 늦은 주자’라고 표현하며 정부의 디플레이션 방치와 구조개혁 지연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재정·사회보장·세제 개혁과 외국인 노동력 수용, 소비세 인상 등 당시로서는 부담스러운 의제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도 참여해 행정과 재정 개혁을 압박했다. 4년간 제시한 정책 제안만 약 200건에 달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참여한 회의에서 “내 아내는 한국영화만 본다”고 발언하며 일본 대중문화의 질적 저하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ong>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