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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희망이 없는 동네에요. "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C지구에서 만난 김종모(85) 씨는 문 닫은 자신의 가게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달 9일 찾은 마을은 폐업한 채로 오랫동안 방치된 상점들로 인해 마치 90년대 유령마을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매년 300만 명이 방문하는 설악산국립공원의 대표 관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설악동 주민 김종모씨가 폐업한 자신의 가게를 바라보고 있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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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을 중단한 리조트는 거대한 폐건물로 남았고, 광활한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10년 전쯤 가게를 폐업했다는 김 씨는 “수학여행이 끝난 뒤로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해 이제는 대부분이 폐업에 들어간 상태”라며 “이곳을 활성화한다며 출렁다리도 만들고 했는데 아무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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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요세미티'로 개발…수학여행단 몰리며 전성기
과거 대표적인 관광지구이자 수학여행지로 인기를 끌었던 설악동 집단지설지구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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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동은 한때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구이자 수학여행지였다. 1969년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감명받았고, 귀국 후 설악산을 요세미티처럼 세계적인 국립공원이자 관광지로 발전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후 설악산 입구에 흩어져 있던 상가와 숙박시설을 설악 세이빙론 동 B·C지구로 강제 이주시키는 등 집단시설지구를 조성했다. 관광객 편의 제공과 환경 보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취지였다. 1980년대에는 수학여행단을 비롯한 단체 관광객이 대거 유입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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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 사업에 264억 투입…“활성화 효과 미미 2000천만원 ”
그러나 90년대 들어 국내 여행 패턴이 바뀌고 해외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설악동은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20년 넘게 장기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흉물로 방치된 설악동 B·C 지구를 재건하려는 시도가 없는 건 아니다. 재작년부터는 강원 속초시가 ‘설악동 재건사업’으로 26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설악향기로(스카이워크·출렁다리)와 벽화길 등을 조성했다.
설악동 재건을 위해 설악동 B·C 지구를 연결하는 스카이워크가 설치된 모습. 천권필 기자
이후 방문객이 증가하긴 했지만, 주민들은 활성화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한다. 한 주민은 “스카이워크는 평소에는 주민들의 개 산책로로 쓰고 있다”며 “지역 상권에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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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체계가 쇠락 원인 “입구에 대형 주차장, 설악동 패싱”
지난 5월 설악산국립공원 소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기 위해 차량 행렬이 길게 줄지어 서있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현지에서는 설악동이 황폐해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교통 체계를 꼽았다.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 신흥사가 운영하는 대형 주차장이 있다 보니 수많은 방문객이 설악동을 '패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말이나 관광 성수기가 되면 주차장에 진입하기 위해 한 시간 이상 대기하는 차량 행렬을 볼 수 있다. 이날도 소공원 주차장은 설악산 방문객 차들로 가득 차 있어 황량한 설악동 B·C 지구와는 대비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설악동 C지구 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 모습. 천권필 기자
설악동과 달리 인근 설악산국립공원 백담지구에서는 차량 통행을 막는 대신 백담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조우 상지대 조경산림학과 교수는 “설악산 백담사처럼 설악동에서 소공원 구간의 자가용, 관광버스 통행을 셔틀 교통 체계로 전환하는 게 최선”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신흥사를 설득해 주차장을 없애는 대신 주차장 수익금을 보전해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설악산 B·C 지구와 소공원을 연결하는 트램을 설치해 성수기 차량 정체를 해소하고 설악동 B·C 지구를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통 체계만 바꾼다고 해서 설악동이 되살아날지는 미지수다. 대규모 단체 관광에서 벗어나 여행 패턴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만큼 국립공원 관광 지구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설악동은 단체 관광 시대에 최적화돼 번영을 누렸지만, 그 성공 공식이 오히려 변화의 족쇄가 되어 장기 침체를 겪었다”며 “국립공원 탐방 트렌드에 맞는 지속가능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초=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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