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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복지 등 사회적 안전망에 들어가는 정부 지출이 세수입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국가 부채 이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그간 재정으로 부양해오던 방식으로는 경제가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재정 불감증은 더욱 심해졌는데, 이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긴축재정안도 국민과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재정 중독’의 늪 속으로 더욱 빠져드는 모습이다. 한때 유럽국 중 독일 다음으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했던 프랑스가 개혁의 첫발도 떼지 못하면서 국가 부도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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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부채 현황은… 올해 국가 부채 이자만 620억 유로=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프랑스의 지난해 재정 적자는 1686억 유로(약 270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5.8%였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약 3.1%)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유로존에서도 그리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다. 우리나라 전체 주택청약저축 금리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채 증가 속도다. 현재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시간당 200억 원씩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현행 재정 구조를 유지할 경우 부채 이자만 2029년에는 약 1000억 유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공공부채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학생관리 3조3458억 유로로 GDP 대비 114%에 달하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4%보다 40%포인트가량 높다. 이미 유로존 평균을 훌쩍 넘겼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부 부채 순위로도 5위에 해당하는 위험 수준이다.
이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공공 부채 이자는 62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연금 늘리는 을 제외한 국가 교육 예산(630억 유로)에 육박한다. 오는 2027년에는 부채 이자가 교육 예산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 긴축 재정에 반대한 야당의 불신임 표결로 사퇴한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전 총리가 지난 8일 의회 신임 투표에 앞서 연설하는 모습. AFP ibk기업은행스마트뱅킹 연합뉴스
◇막대한 실업급여 지출 등 구조적 문제에 ‘코로나19’로 상황 악화= 이 같은 재정 악화에는 구조적 원인과 외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구조적 원인으로는 높은 복지 지출과 세수 구조 경직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는 GDP 대비 공공지출 비중이 OECD 최고 수준인 58%에 달한다. 연금, 의료,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 지출이 막대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보장과 경직성 때문에 고용 창출 자체가 쉽지 않아 실업 급여 지출은 계속해 늘어나고 있다. 세수를 더 걷기 쉽지 않은 구조도 한몫하고 있다. 이미 세율이 높은 편이라 추가 증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부채 증가에는 외부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그 시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당시 과열된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자 정부 차원의 자금 확대가 시작됐다. 약 10년 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 프랑스는 사회 안전망을 지키기 위해 돈을 더 풀기 시작했다. 2022년 프랑스 정부는 GDP의 58%가 넘는 공공자금을 투자했는데 이는 유럽연합(EU) 평균보다 9%포인트나 높았다. 여기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17년 집권 이후 펼친 감세 정책으로 약 150억 유로의 세수 손실이 발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도 재정에 또 다른 악재였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해 왔는데 전쟁으로 수입 길이 막히자 프랑스 가정용 전기요금은 2021년 이후 60%까지 올랐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을 인하하고 요금 인상을 늦췄으며, 이는 세수에 또 다른 구멍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과도한 지출의 일부가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유럽 에너지 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이중 악재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10일 프랑스 전역에서 정부 긴축 정책에 반발한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시위대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야당의 정부 긴축안 발목에 개혁 힘들어… 총파업 등 국민 반발도= 프랑스 정부는 최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440억 유로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안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의회는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사퇴를 이끌어 내며 이를 무산시켰다. 극우 정당과 좌파 연합 모두 여론을 의식해 국가 위기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극우성향의 국민연합(RN)은 내년 대선을 노리고 집권 여당의 실책을 부각해 차기 정권 획득을 노리고 있고, 좌파 연합은 지지 기반인 노조의 눈치를 보고 있어 긴축안 통과는 더욱 난망한 상황이다.
국민 역시 정부의 긴축 예산안에 반대하며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 지출 삭감에 반대해 오는 18일(현지시간) 전국 총파업을 예고했고 이번 파업은 급진적인 좌파 계열인 노동총연맹(CGT)과 솔리데르(연대), 온건한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을 포함한 다양한 노조가 모두 참여할 뜻을 밝혔다. 이날 40건의 집회가 신고되는 등 시민들도 2차 시위에 나서면서 파업·시위 규모가 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프랑스 당국은 예측하고 있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약 18만 명이 참여한 반정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 예산안에 대한 불만과 함께 마크롱 대통령이 바이루 총리 후임으로 자신의 측근이자 우파인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를 임명한 데 따른 반발이다. 시위대는 “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노동자, 학생, 은퇴자 등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부담을 전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의회는 물론, 국민도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프랑스의 재정개혁은 더욱 요원해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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