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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과잉 사회’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모두 주목해야 하는 책이다. 먼저 콘텍스트부터. 지난 2013년 이미 한차례 국내에 출간됐던 이 책은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이었음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절판됐다. 하지만 올 초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엑스(X·옛 트위터)에 이 책 내용의 일부가 발췌돼 활발히 공유되면서 전문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었는데, 절메디프론주가
판되어 구할 수 없자 출판사에 복간을 요청하는 전화와 메일이 쏟아졌다고 한다. 실제 이 시기 엑스에는 “중고 서점에 (정가 1만8000원의 3배인) 6∼7만원에 팔더라” “도서관에서도 ‘예약 중’으로 뜬다” “아마존 킨들에서 원서를 판매 중이다” 등 책을 애타게 찾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결국 출판사는 북 펀딩 방식의 재출간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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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10년여 만에 ‘끌올’ 되었을까. ‘사이언스’지의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저널리스트 마라 비슨달은 이 책에서 20세기 후반 중국, 인도, 한국, 대만, 알바니아 등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 '여아 낙태'의 연원과 그 여파를 추적한다. 어떤 이는 '여아 낙태'를 한국의 ‘흑역사’쯤으로 취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문제가 장외거래
결코 누렇게 바랜 신문지 속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2050년까지도 시퍼렇게 살아 있을 위협이라고 경고한다. '여아 낙태'로 인한 ‘잉여 남성’(결혼 가능 인구가 모두 결혼하는 가상 세계에서 남겨진 남성들)의 출현이 신부 매매, 성매매, 인신매매 등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범죄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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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프랑스의 인구통계학자 크리스토프 길모토의 연구를 토대로 논의를 끌고 나간다. “2005년 길모토는 아시아에서 과거 몇십년 동안 자연 출생 성비인 100대 105가 유지되었다면 이 대륙에는 1억6300만명의 여성이 더 살고 있을 것이라고 산출했다. (…) 1억6000만명은 미국의 전체 여성인구 수를 넘는다.” 흔히 '여아 낙태'가 ①과거에 특수건설 주식
②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만 나타난 국소적인 현상이라고 착각하지만, 이 막대한 규모는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다. 지은이는 같은 현상이 힌두교, 이슬람교도, 기독교 국가에서도 포착됐으며,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모니터와 흙길을 오가며 증명한다.
남성 과잉 사회 l 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현암사, 2만2000원
'여아 낙태'가 발생하는 조건과 메커니즘을 서술한 부분이 특히 돋보인다. 지은이는 ‘개발→출생률 저하→성별 선택’의 과정을 국가적, 개인적 차원에서 다면적으로 검토했다. 출생률을 조절해야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강박”을 느끼는 개발도상국은 산아제한 정책을 펴고, 그 과정에서 남아가 선택된다는 것이다. 이 강박은 서구 열강이 돈으로 심었다. 아시아를 상대로 장악력을 유지하려던 서구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이론적 토대 삼아 인구 조절을 조건으로 내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고, ‘다산=빈곤’이라는 등식은 국가와 개인 차원에서 동시에 내면화됐다. “아이를 (많이) 낳지 말 것과 아들을 낳으라는 두가지 압력을 모두 받는 세계에서 성 감별 낙태는 뜻밖의 횡재로 보일 수 있”다. 때로 “신기술은 전통을 영속시키기”도 한다. 1980년대 초음파 기술의 개발 및 보급은 성별 감별 낙태를 더 수월하게 했고, 의료 기술의 발달은 혹시나 자녀가 사망할까 봐 여럿을 낳던 관습적 사고까지 바꿨다. 결론은 “하나만 낳는다면 아들”이었다.
이런 연쇄작용 끝에 우리가 목도하는 건 막대한 규모의 잉여 남성과 그 여파다. 단적인 예가 결혼 이주다. 매매와의 경계가 흐릿할 만큼 초스피드로 이뤄지는 배우자 선택, 이후 빈발하는 착취와 폭력. 이런 일이 아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한국, 타이완 남성이 이 시장의 주 “고객”이었지만, 미래는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상당한 규모의 잉여 남성이 출현하고 있어서다. 지은이는 이주 전문학자 김두섭의 경고를 인용한다. “다음 25년 동안 여기(한국)에서 벌어진 상황이 중국에서 이어진다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대륙으로 엄청난 이주가 이뤄질 겁니다.” 2020년 기준 중국의 잉여 남성 수는 3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이 책은 추산한다.
성매매, 인신매매뿐 아니라 전반적인 치안 악화도 경고한다. “오늘날 성별과 폭력이 연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지만, 범죄 관련 통계들은 이런 특별한 고정관념이 반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실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1992∼2004년 중국의 범죄율은 거의 두배로 뛰었고, 인도의 경우 2003∼2007년 강간 사건은 30% 이상, 유괴는 5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연관성을 증명할 보다 직접적인 통계도 있다. “중국에서는 각 성마다 한 자녀 정책을 강화한 시기가 달랐는데, 이 시차를 토대로 연구한 결과 (…) 출생 성비가 일찍 높아진 성들은 일찍 범죄가 급증했다. 출생성비가 1%만 증가해도 지역 범죄율이 5∼6% 증가”했다. 올 초 엑스에서 빈번하게 공유된 텍스트 중 하나도 바로 이 통계였다. 다만 이를 설명하면서 “테스토스테론의 범람” 같은 부주의한 수식과 접근법을 쓴 점은 아쉽다.
중국 청년 남성 단체 ‘애국자 클럽’ 르포, 결혼이주여성 인터뷰 등 방대한 현장 취재와 통계를 유기적으로 얽은 수작이다. 한국이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책인데다, 이대남 37.2%가 이준석 후보를 지지했다(지상파 방송 3사 출구 조사)는 기막힌 성적표를 받아 든 작금의 콘텍스트 속에서 한층 더 몰입감 있게 읽힐 텍스트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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