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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기간이니 다음 콘텐츠는 집중호우와 그에 따른 피해로 하죠.” 하지만 며칠 뒤 심한 폭염이 예고 없이 닥쳐왔다. 전국에서 일 최고기온 기록을 다시 쓴 날이었다. 다급한 전화. “마른장마라 비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벌써 멀어졌어요. 폭염으로 주제를 바꿀게요!” 그리고 한 시간이 채 안 돼 다시 연락이 왔다. “서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요. 1부는 폭염으로, 2부는 집중호우로 할게요.” 문자에서 P 작가의 우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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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경보가 발효된 7월8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가 열기로 이글대고 있다. ⓒ연합뉴스
이 지면도 그렇다. 게재일이 다가오면 심란하다. 글이라 방송보다 시차가 좀 더 있는데, 그사이에 표변하듯 기후가 바뀌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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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가 아니다. 올해 유독 변덕스러운 기후는 데이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림 1〉은 ‘기후 띠(Climate Stripe)’다. 각 해의 기온을 최근 30년 평균기온과 비교해 더 더우면 붉은색, 추우면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색이 짙을수록 평년보다 차이가 크다.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책 표지엔터테인먼트주
(〈기후 책〉, 2023)에 사용해서 더 유명해졌다. 그걸 한국 기상청 전국 데이터를 사용하고, 색을 부드러운 파스텔톤으로 바꿔 표현해보았다.
1973년부터 2025년까지 매해의 6월1일~7월9일 전국 기온을 색깔로 표시했다. 각 해의 기온을 최근 30삼진 주식
년 평균기온과 비교해 더 더우면 붉은색, 추우면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색이 짙을수록 평년보다 차이가 크다. 올해가 유독 붉은색이 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6월1일부터 7월9일까지의 전국 기온을 표현했다. 맨 왼쪽이 1973년, 맨 오른쪽이 올해다. 대체에너지관련주
올해 유독 붉은색이 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색만으로는 정량적인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계기상기구(WMO)는 가로축은 그대로 둔 채 세로축을 추가하고, 색 띠를 막대그래프로 변환해 표현하는 걸 선호한다. 그 형식으로 만든 그래프가 〈그림 2〉이다. 같은 색을 사용하지만, 막대의 길이 차이로 기온 차이를 정량적으로도 비교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올해 6월1일~7월9일 평균기온은 최근 30년 평균보다 2.6℃ 높았다. 올해 여름 전반기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뜨거웠는지 알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WMO) 방식으로, 1973년부터 2025년까지 6월1일~7월9일 기간 평균기온과 차이를 나타낸 그래프.
실은 6월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충분히 심각한 이상기후였다. 기상청 전국 데이터가 존재하는 1973년 이후 역대 6월 중 가장 기온이 높았다. 이건 다른 의미에서 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이 많겠지만, 5월까지만 해도 꽤 서늘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쾌적한 날이 이어졌다. 실제로 최근 30년 평균보다 기온이 낮았다.
여러모로 대단했던 7월8일
그러니까, 평년보다 상당히 서늘했던 달 바로 다음에, 역대 가장 더운 6월이 천연덕스럽게 찾아왔다. 표변이었다.
요즘 한국 기후는 절제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역대급으로 더운 6월로 모자라, 6월 말 7월 초에는 더 강한 폭염이 찾아왔다. 유명무실한 장마 뒤에 고기압이 한반도를 겹겹이 뒤덮었고, 한여름 절정기에나 경험하던 폭염이 때 이르게 찾아왔다. 절정은 7월8일이었다. 전국 90여 기상 관측소 가운데 70여 곳에서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뜨거웠다. 서울도 7월 말~8월 초 한여름의 최고 기록에 육박하는 최고기온을 보이며 여름 상반기 최고 기록을 깼다. 해당일 최근 30년 평균보다는 무려 9℃ 높았는데, 1907년 근대 기상 관측 이후 서울에서 측정된 역대 모든 여름날 가운데 5위 안에 들 정도로 심각한 이상기온이었다. 평균기온은 더 심했다. 해당일 최근 30년 평균보다 6.5℃ 높았는데, 역대 모든 여름날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수치였다. 이보다 심각했던 날은 최악의 폭염으로 역사에 남은 1994년 7월24일뿐이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날이었다.
이렇게 폭염 이야기를 계속하며 무난하게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이 글을 쓰는 며칠 동안 전국은 심한 폭우에 시달렸다. 7월16일 경기도 오산에서는 옹벽이 무너져 안타까운 인명 사고가 났다. 충청남도와 광주에서는 대규모 수해가 발생했고, 경남 산청과 경기도 가평에서는 다수의 실종자와 사망자가 나왔다. 언론에서는 100년 만의 폭우, 200년 만의 폭우라는 말이 나왔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장마가 뒤늦게 왔다거나, 극한 호우가 찾아왔다는 말도 나왔다. 기온은 최근 30년 평균보다 한참 아래로 떨어져서 선선한 날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기후 이야기를 하는 건, 뭔가 곡예를 하는 느낌이다.
최근 기후학계에서도 주목하는 개념
어차피 글이 나올 때 더 더울지 덜 더울지 비가 올지 말지 예측하기 힘드니,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야겠다. 이번 이른 폭염에서 사실 내 주의를 가장 끈 건 폭염이 보여준 또 다른 변덕이었다. 두 가지 다른 성격의 폭염이 짧은 기간에 교차로 나타났다. 습한 폭염과 건조한 폭염이다. 7월 초의 폭염은 습한 폭염이었다. 우리가 흔히 무더위라고 표현하는 숨 막히는 더위다. 한국에서는 장마 뒤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에 들 때 자주 나타난다. 하늘도 수증기로 뿌옇고, 돌아다니면 몸에서 삼겹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괴로운 폭염이다. 땀 증발이 어려워 더 강력한 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더 악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바로 연이어 온도는 높지만 건조한 폭염이 나타났다. 찌르는 듯한 온도 때문에 괴롭지만, 나무 그늘에만 들어가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습한 폭염과 건조한 폭염은 최근 기후학계에서도 주목하는 개념이다. 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하경자 부산대 교수 등의 연구에서는 대략 습도가 66% 이상을 습한 폭염, 33% 이하를 건조한 폭염으로 구분한다. 건조한 폭염은 대륙 내부에서 자주 발생하고, 습한 폭염은 동아시아와 해안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다. 한국은 습한 폭염이 잘 발생하는 대표적 지역이다.
그런데 데이터를 보면 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긴 기간 데이터가 있는 서울의 한여름(7월과 8월) 상대습도 경향을 보면, 1970년대를 기준으로 상대습도가 꾸준히 줄어드는 양상을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그림 3〉 참조). 약 50년째 점점 건조해졌다는 뜻이다. 이건 전 세계 경향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지구온난화로 온도가 오르면서 상대습도가 줄어드는 경향이 세계적으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1908년부터 2024년까지 한여름(7월1일~8월22일) 서울의 상대습도 평균값. 1970년대를 기준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서울 기준으로, 이렇게 줄던 상대습도가 가장 낮았던 해는 2018년이다. 실제로 이해의 폭염은 조금 특이했다. 1994년과 함께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자주 언급되는 해인데, 최고기온과 평균기온은 모두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습도만은 매우 낮았다. 불가마에 들어간 것 같은, 건조하고 찌르는 듯 강렬한 열기가 여름을 지배했다. 건조한 폭염이라고 위험성이 줄진 않았다. 이해에 발생한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170명이었는데(통계청 사망원인 통계 기준), 2010년대에 연간 61명 내외가 사망하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3배 가까이 늘었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한증막형’ 습한 폭염의 극단은 지난해에 찾아왔다. 서울 기준, 더위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8월1~22일 가운데 하루 최고기온이 33℃가 넘는 폭염일은 18일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날의 습도가 66%를 넘겼다.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날의 이전 최고 기록은 20세기 중반의 13일이었고, 21세기 들어서는 대부분 닷새를 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 모든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올해는 폭염이 일찍 시작됐다. 7월 초에 이미 기존 기록을 깰 정도의 강렬한 폭염이 등장했다. 습한 폭염과, 상대적으로 건조한 폭염이 교차했다. 이후 본격적인 여름에는 둘 중 어느 폭염이 찾아올지 모른다. 데이터만 보면 최근 수년 사이에 상대습도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의 극단적인 습한 폭염이 갑자기 나온 현상이 아니며 올해 재현될 수 있다. 반면 2018년처럼 최고기온과 평균기온 기록을 경신하며 강렬한 열기를 선보일지 모른다. 한 달 뒤 이 글을 다시 떠올릴 때엔 결과를 알게 될까. 마음만은, 부디 예상이 다 엇나가 적절한 더위와 비가 찾아오는 무난한 여름날을 즐기고 있기를 바란다.
윤신영 (과학 저널리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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