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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상임이사와 염무웅 김판수 공동이사장(왼쪽부터). 송경동 상임이사 제공


2020년 1월 창립 이후 문화예술인과 사회운동 단체에 대한 지원과 연대 사업을 펼쳐온 재단법인 익천문화재단 길동무(공동이사장 김판수·염무웅)가 오는 5일 ‘송년 후원 연대의 날’ 행사를 연다.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옆 한강 선상 레스토랑 잠두봉 더나인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사회단체인 ‘동자동사랑방’, ‘블랙리스트 이후’,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 ‘이주민센터 동행’,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야마토통기계 ’에 대한 재단의 사회연대기금 전달식도 겸한다. 오후 6시엔 재단 재원 마련을 위한 플리마켓 행사도 있다.
“길동무 고문인 문정현 신부 등 100여분이 많은 물품을 내어주셨어요. 문 신부님은 새만금신공항반대 농성장에서 보름여 작업한 서각 3점을 보내셨는데요. 김판수 선생님의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정의로운 세상을 위하여’와 염 바다이야기꽁머니 무웅 선생님의 책 이름과 글의 말씀을 딴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불가능에 대해 꿈을 꾸는 인간정신의 위대함’이라는 글을 새긴 서각입니다. 사회연대기금 선정단체인 동자동사랑방에서는 동자동 쪽방에 사는 장애인 동양화가 윤용주 님의 작품 ‘봄날의 오후’를 내주셨어요. 아이엠에프 때 부도로 모든 것을 상실하고 쪽방에 사시는 분이죠.”
창립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첫해부터 길동무 상임이사를 맡아 두 공동이사장을 도와 재단을 이끄는 송경동 시인의 전언이다. 그는 지난 3월부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
지난 29일 전자우편으로 만난 그는 “재단은 창립 5년을 맞아 더 많은 길동무와 함께 걸어나가는 운동을 꿈꾼다”고 했다. “지난가을엔 길동무 회원 단체인 길동무회(회장 안삼환 서울대 독문과 명 바다이야기게임2 예교수)를 만들어 500여분이 참여하셨어요.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데 더 많은 소중한 역할을 하는 길동무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길동무 일만명이 함께하는 연대의 문화예술공동체를 꿈꿔봅니다.”
재단은 창립 이래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사회단체들에 연대기금을 전해왔고, 묻힌 진실을 찾아가는 미디어활 야마토게임장 동가, 다큐감독 지원도 해왔다.



송경동(가운데) 상임이사가 문정현(왼쪽) 신부가 새겨 재단에 기증한 서각을 들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강형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송경동 상임이사 제공


‘한국사회기층보고’ 사업은 세번째 기획이 진행 중이다. 2020년 코로나 시기 사회 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된 ‘유령인간들’의 삶 보고서를 펴냈고(직장갑질119 공동기획·책 ‘숨을 참다’), 2021~2022년엔 한국 사회에서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민 인권 르포를 오마이뉴스에 30회 연재하고 책(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으로 냈다. 세번째는 전국의 기후생태운동 현장과 의제들을 세상에 알리는 언론 르포 사업(세상과함께 공동기획)이다. 더해, 청년 작가를 발굴·지원하고 세계혁명사 주제 등의 인문강좌 사업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민중시인인 그가 2020년 가을 두 공동이사장의 길동무 상임이사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재단이 김남주 문학상 제정에 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단다. “그러다 재단을 일상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 평화, 평등 등의 가치를 위해 일하는 소박한 문화예술공동체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재단 일을 보면서 생애 처음 ‘봉급 생활자’가 되었다. “1992년 스무살 초입에 구로공단에 있던 ‘구로노동자문학회’ 활동을 시작한 이후 각종 문학운동, 사회운동, 노동운동을 배우겠다고 쫓아다녔는데 별도로 활동비나 상근비를 받지는 못했어요. 진보생활문예지 ‘삶창’을 만들 때 50만원씩 9개월여를 받아본 게 전부였습니다. 바보 같은 게 처음 상근비라고 40만원 받으며 이제 내 운동은 끝났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던 청년시절이었습니다. 나중엔 월 수십만원이라도 받는 활동가가 부럽더군요. 사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득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는 무슨 거창한 활동한 적 없고, 가난한 농성장에 밥 얻어먹으러 다녔다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활동 조금 한 것 팔아 무슨 자리 갖는 건 죽어도 싫었습니다. 김판수 염무웅 선생님께서 굳이 저에게 길동무 일을 맡기신 까닭도 그런 주변머리 없고 대책 없는 제가 안쓰러우셨던 까닭 아닌가 싶어요.”



그가 처음으로 급여를 받는 상근자를 감수(?)한 데는 두 공동이사장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컸단다.
“염무웅 선생님은 한국 현대문학의 큰 버팀목으로 평소 존경의 마음이 깊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권 당시 공안탄압이 심했던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아주시는 등 늘 제가 하는 일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김판수 선생님께서도 2016∼7년 박근혜 퇴진 광화문캠핑촌 활동을 할 때 늘 찾아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박근혜 퇴진운동 후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 운동 때도 보이지 않게 도와주시는 모습을 뵈며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던 두 어른께서 함께 말씀 주신 거라 큰 고민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길동무 덕에 부모 노릇 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길동무 창립을 준비하던 당시 피아노 전공자인 아들이 씨지브이에서 기간제노동자로 일하며 자력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부모 역할을 한번은 해야 할 때였는데요. 사회운동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상근비를 받아 아이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었죠.”
김남주 문학상 제정에 힘 되겠다는 마음으로 재단 참여 권유 받아들여 “처음으로 상근비 받는 활동가 됐죠 길동무는 민주 평화 평등 꿈꾸는 소박한 문화공동체들의 사회적 진지”
오는 5일 송년 후원 연대의 날 행사 작은 사회단체 5곳에 연대기금 전달
어느 단체나 지속가능을 꿈꾼다. 재단이 이번에 의욕적으로 플리마켓 행사를 하는 것도 이런 바람에서다. 시인에게 재단이 계속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뭔지 물었다.
“길동무들은 우리 사회의 참된 민주주의와 평화, 평등, 그리고 지속가능한 생태사회를 꿈꿉니다. 수많은 생명의 다양성이 존중되며 차별과 혐오, 폭력이 없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런 꿈을 꾸는 작고 소박한 문화공동체들이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더 많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진지의 하나로 길동무들의 네트워크, 커뮤니티가 기능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돈의 가치만이 전부인 것처럼 행세하며 모든 공동체적 가치를 잠식해 가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혼자의 힘만으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그런 우리가 함께 모여 서로를 지키며 민주·평화·평등의 지속가능한 숲을 이루어 나가고, 그 민주의 숲을 점점 더 넓혀나가는 길동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내란 시기에 윤석열 퇴진과 사회대개혁을 위한 비상행동 공동대표를 지냈고 박근혜 퇴진 운동 때는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 촌장도 지냈다. 그가 지금껏 광장에서 단식한 기간만 86일이다.
시인에 앞서 투철한 사회운동가인 송경동에게 도대체 시란 뭔지 궁금했다. 인터뷰 끝에 묻자 장문의 답이 돌아왔다.
“저는 시와 문학, 그리고 여러 예술작품을 짓는 일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의 양식을 짓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여 시인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몸의 양식을 짓는 농부나 어부, 생활의 양식을 짓는 광부나 노동자들의 역할과 다르지 않습니다. 농부나 어부나 광부나 노동자들이 자신이 지은 양식을 혼자 갖지 않고 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풍요를 위해 나누어주며, 정성을 다하듯이 시라는 마음의 양식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좋은 공동체의 양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답이 이어졌다. “더불어 시와 문학은 나와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삶의 학문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허명이나 판매부수를 좇는 일이 아니라 삶과 사회의 숨겨지거나 묻혀진 진실을 밝혀나가며 스스로 인간됨을 회복해나가는 구도의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모든 관습과 제도, 경계를 넘어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꿈꾸는 몸부림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송경동 상임이사. 송경동 상임이사 제공


이런 생각도 밝혔다. “한편 시와 문학예술은 이 사회의 또 다른 헌정기관 역할이라는 생각입니다. 제2의 언론, 제3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역할을 시와 문학예술이 해나간다는 생각입니다. 또 다른 성문화된 미래의 헌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인들의 역사적 역할이 그러했습니다. 갑오농민전쟁을 동학란이라 칭하던 시대에 서사시 ‘금강’을 써낸 신동엽이 그러했고, 식민사관만이 판치던 시대에 ‘거대한 뿌리’를 더듬던 김수영이 그러했고, 험악한 군부 독재 치하에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친 김지하가 그러했고, 가지지 못한 민중들에 대한 괄시와 모멸이 일상화된 세상에 맞서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즐겁다’고 일갈했던 신경림이 그러했습니다. 삼팔선 이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던 때 ‘조국은 하나다’를 외친 김남주가 그러했고, 노동자라는 단어 자체가 사문화되고 금기어였던 시대에 ‘노동의 새벽’을 그린 박노해 백무산의 역할이 그러했고, 성장과 개발만이 전부이던 시대에 ‘녹색평론’을 창간한 김종철이 그러했습니다. 5·18과 4·3의 고통과 폭력에 대한 전 세계적인 동의와 공감을 이루어낸 한강과 현기영의 문학이 그러했습니다. 현행 법정은 늘 그들을 블랙리스트로 다루었지만 결국 어떤 것이 정의인지를 참다운 문학은 당대의 탄압을 넘어 용기 있게 말해 온 또 다른 민주민중법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시와 문학예술은 어떤 삶이 진정한 삶인지, 타인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모두의 평화와 평등, 지속가능함을 위해 좀더 나아가야 할 사회적 구조와 윤리적 기준은 어떠해야 하는지, 좀더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어떤 차별과 폭력과 야만은 금기가 되어야 하는지를 법조문과 기사 등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고, 이에 대한 너른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 가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이 역할이 충실하면 좀더 많은 동시대인들에게 사랑받지만, 이런 역할을 비켜나 음풍농월로 빠질 때는 외면받기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른쪽부터 송경동 상임이사, 염무웅 공동이사장, 유시춘 교육방송 이사장, 김판수 공동이사장,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송경동 상임이사 제공


내친김에, 시는 그에게 어떻게 들어오는지 물었다.
“저의 경우 시는 참 오묘한 거여서 기고만장해져 있을 때나 어떤 욕심이나 이기심에 휩싸여 있을 때는 잘 오지 않습니다. 조금은 힘들거나 아득하게 외로울 때, 상심이 깊을 때나 모든 걸 잃고 나는 이제 가진 게, 남은 게 없구나 하면서 사람들과 세상 앞에 겸허해질 때 불현듯 찾아옵니다. 내가 잠시 착해지는 때입니다. 내가 잠시 인간다워질 때입니다. 어떤 철학적 사유나 고매한 이상 같은 걸로 오지 않습니다. 내 속의 어떤 간절한 그리움 속에서 옵니다. 언제 올지 모르니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면 괴롭기도 합니다. 시는 한 점의 나태도, 허위나 기만도, 적당한 타협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피를 말리며 내게 다가온 시의 말에 근접하기 위해 고투해야 합니다. 그만큼 인간적인 시간 속에 오래 묶여 있어야 하니 괴롭지요^^ 사실 사회운동한다는 핑계로 그 창작의 고통 속으로 자주 안 들어가니 문제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의 불의와 싸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어려운 건 역시 자신을 지키며 자신과 싸우는 일일 것입니다. 제 경우 어쩌면 시로부터 달아나려 한 시간이 태반입니다. 문청이던 이십대 시절부터 ‘시인 소설가가 되는 건 급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한 전후시인의 말을 좇아 문학을 향해 돌진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되는 길을 찾아 떠돌았습니다. 멀리멀리 에돌아서 문학을 향해 가는 길이 때론 외롭기도 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원·연대 계좌 : SC제일은행 378-20-190032,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