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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민주주의를 논할 때 플라톤보다 아이스킬로스(BC 524~456)나 소포클레스(BC 497~406), 에우리피데스(BC 480~406) 같은 비극 작가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아테네 보금자리론 대출 민주주의 전성기(BC 499~404)에 활동했던 사람들로 타지 출신이지만 자신을 받아준 아테네에 대한 애국심과 자부심이 충만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문학 작품일 뿐만 아니라 아테네 민주주의 정신을 시민들에게 공연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시민 교육 텍스트였다. 아테네에서 이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훨씬 유명했으며 영향력도 컸다. 별내지구분양건설 독일 고전 문헌학자 베르너 예거의 말처럼 “아테네인들은 비극 작가들을 정치 지도자들의 헌법적 권위보다 더 큰 책임을 갖고 있는 정신적 지도자”로 여겼으며, 영국 고전학자 올리버 태플린의 지적처럼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 도시 공동체 구축의 통합 원리”로 작동했다.
특히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에 관한 3부작 ‘아가멤논’ ‘제주(祭酒)를 바 일반대출이자 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은 민주주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 3부작은 그리스 지역의 가장 강력한 군주이자 트로이전쟁 때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르고스의 아가멤논과 부인 클리타이메스트라, 그리고 아들 오레스테스의 기막힌 사연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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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르고스는 그리스 지역에서 가장 강성한 도시국가였는데, 3대째 왕위 다툼이 이어졌다. 먼저 선대엔 동생이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고, 그 형의 아들인 아가멤논은 원수를 갚고자 삼촌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또 아가멤논은 죽은 삼촌의 아들인 사촌이, 자신의 부인이자 왕비인 클리타이메스트라와 공모해 복수하는 대학생학자금융자 바람에 살해당하고 왕위를 빼앗겼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부친인 아르고스 국왕의 복수를 해야 했는데, 그 대상이 자기 모친이었다. 지성의 신 아폴론이 공적인 국가를 위해 모친을 죽여 복수해야 한다고 부추기자 오레스테스는 오랜 고민 끝에 사적인 정을 끊고 모친을 살해했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모친의 망령에 시달리면서 패륜아가 되어 아르고스의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여러 지역을 도망치다 지친 오레스테스는 마지막으로 아테나 여신의 신전에 와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고 지쳤으니 자신을 심판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테나 여신은 자신은 인간사를 판단할 수 없다며, 대신 아테네 시민들을 모아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시민들은 유죄와 무죄를 동률로 판단했다. 결국 아테나 여신은 최종 판결하기를, 오레스테스는 다시 아르고스로 돌아가 태연하게 왕위에 오를 수도 없고 패륜아로서 사형을 선고할 수도 없으니 이곳 아테네에서 시민이 되어 살 것을 권유했다.
거기까지 쫓아왔던 복수의 여신들이 복수라는 임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자 아테나 여신은 그들에게도 아테네에서 살 것을 권유했다, 다만 그들의 이름이 아테네엔 어울리지 않으니 ‘자비의 여신들’로 개명하라는 조건을 달고서. 결국 오레스테스와 복수의 여신들, 그리고 판결하러 왔던 아테네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며 막이 내린다.
프랑스 화가 윌리엄-아돌프 부게로의 1862년작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 어머니(그림 맨 왼쪽)를 살해한 오레스테스(가운데 남성)가 죄책감에 고통받는 장면을 그렸다. /크라이슬러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의 핵심은 아테네라는 민주적 정치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의란 결국 상호 간의 화해라는 것이다. 옳음을 추구하는 ‘철학적 정의(philosophical justice)’를 세우는 과정은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연속된 복수를 불러오는데, 이는 결국 가정과 도시 그리고 자연까지도 파괴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그 지혜의 내용은 단순히 아폴론의 주장과 같이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정의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상대방을 서로 인정하고 화해시킬 수 있는 ‘정치적 정의(political justice)’다. 왜냐하면 정치의 목적은 단순히 정의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통합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스킬로스가 최고의 정치체로 생각하는 아테네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이중성을 담지하고, 갈등과 복수의 연속 속에서 얻은 지혜를 통해 시민들이 서로 화해하는 공동체다. 플라톤은 자신의 정의관에 따라 잘 편제되고 질서 잡힌 공동체를 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과 균형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다. 이에 비해 아이스킬로스는 현실의 다양성과 선악의 이중성을 고려해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우며 열린 태도를 중시했다. 그리고 이 열린 공동체는 훌륭하고 고상한 사람만이 아니라, 범죄자, 패륜아, 비주류, 야만인, 여성 등과 같이 소외되거나 돌봄이 필요한 자들도 모일 수 있는 ‘이방인들의 공동체’다.
이것이 바로 아이스킬로스 같은 비극 작가들이 생각했던 아테네의 민주주의 정신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꽃핀 것은 단지 페리클레스의 연설이나 민회의 구성 덕만은 아니었다.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속에 절절히 파고든 비극 작품들에 녹아 있는 아테네의 정신, 즉 화해와 인내, 포용이라는 민주주의 정신 덕이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덕목도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주력해 왔던 민주화와 그것의 제도화만으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인민의 지배’라는 개념이나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방법론만이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인민이 누구인지, 왜 우리가 민주주의를 해야 하는지,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즉 정치 공동체의 목표가 구성원들의 화해와 공존, 더불어 사는 삶에 있음을 직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신의 회복이 가장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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